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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어에서 배우는, 좋은 사람의 정의

 오늘 문득 스페인어를 공부하다 새로운 생각을 하게되었다. Simpatico라는 단어, 영어에서 잘 알다시피 동정심이 있는 Sympathetic과 연관 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스페인어에서의 의미는 Nice. 특히 사람이 Nice하다는 의미로 Simpatico를 사용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이 Nice하다는 것, 좋은 사람이라는 게, 다름 사람들에게 동정심이 있다는 것이 아닐까. 또한 얼마전에 무빙에서 공감능력이 초능력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다른 사람을 공감하고 동정하는 마음을 가진 것, 그게 좋은 사람 그리고 Nice가 아닐까.

해오던 일들만 하고 싶다.

하는 일의 특성상 매일 새로운 일을 마주해야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내가 교육 받고 훈련 되지 않은 일들을 지속적으로 해야하고 실수나 실패 없이 꾸준히 잘해내야 한다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배우고 훈련된 일들만, 해오던 일들만 하면 편한데 왜 그런 삶이 나에게 허락되지 않는 것일까. 내가 한가지에 전문가가 되었을 때, 그 분야를 계속하면서도 지속적으로 더 높은 연봉을 받는 것을 어렵다. 그 동안 쌓아온 전문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시너지가 나는 다른 일을 하기를 바라고 그렇게 했을 때 나의 가치가 증가하는 것 같다. 새로운 일을 할 때, 그 일을 얼마나 완성도 있게 빠르게 해내느냐 또한 나라는 사람을 증명하고 나의 가치를 결정한다. 익숙하지 못한 일을 제대로 못하면 한가지만 해야하는 사람이 되고, 나의 가치와 연봉도 거기에 머물게 되는 것이다. 

말은 많이 할 수록 후회가 남는다.

마음에 담아두기 답답해 말을 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혹은 말을 많이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오랜 대화와 질문에 하지 않으려던 말을 해버린 경우도 있다. 이런 일은 꼭 대화를 할 때만 일어나지 않더라. 문자를 보낼 때나 이메일을 쓸 때도 후회가 남는 말을 남길 때가 있다.  마음에 담아두기 답답해서 털어놓게 되는데,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담아둬서 답답한 마음보다 너무 많이 말해 후회되는 마음이 더 크다는 것이다. 그러니 답답한 마음을 견디는게 낫지 않을까. 그리고 말은 해버리고 나면 다른 사람에게 전달이 되고 주워담을 수 없으니 더 큰일이다. 말하지 않으면 그래도 중간은 가지 않을까. 어찌되었건 여전히 말은 많이 할 수록 후회가 남는다. 

어려운 일을 하는 방법, "하면 된다"의 의미

"하면 된다"라는 응원구 및 격려를 참 많이 봐왔다. 영화에서도, 드라마에서도, 심지어 가족에게서도 여러번 들었다. 심지어 중고등학교 급훈으로도 "하면 된다"라는 급훈을 짓곤 했다. 친숙해서 인지 아니면 그 의미가 와닿지 않아서 인지 아니면 열심히 했지만 소용이 없어서 였는지, 그 이후로 꽤 오랬동안 이 "하면 된다"에 대한 신뢰가 없었다.  나이가 들고 하는 일에 대한 책임과 의무가 커질 때 그리고  할 일이 많아 압박을 느낄 때, 비로소 "하면 된다"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 다시금 깨닫게 된 것 같다. 지금 아는걸 그 때도 알았더라면 더 지혜롭고 수월하게 인생의 고비들을 넘어오지 않았을까. 먼저 하면 되는 일들이 있고, 한다 해도 힘든 일들이 있다. 그리고 해도 안될 것 같은 일들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과거에 나에게 닥쳤던 일들의 대부분은 하면 되는 일들이었던 것 같다. 주로 학교 다닐 때 말이다. 참 왜그렇게 힘들었었는지. 지금 월급을 받기 위해 삶을 유지하기 위해, 해도 힘든 일들과 해도 안될 것 같은 일들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입장에서 하면 되는 일들은 "하면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새로운 위안은, 해도 어려운 일들이 하면 되는 일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하면 되는 일들을 하다보면 해도 어려운 일들을 달성하기도 한다.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 "하면 된다."라는 말은 참 큰 위안을 준다.  하면 된다. 어려운 일을 해야 할 때, 여러가지 두려움과 불안 없이, 하면 되는 일들을 차근차근 성실하게 하다 뒤를 돌아보면 어느새 좋은 방향으로 진행되고 어려운 일들이 해결되어가고 있는 것을 바라보게 된다.    그렇다. 하면 된다.

일요일 저녁에 마음의 평화를 찾는 방법 (Peace in mind on Sunday night)

일요일 저녁만 되면 월요일에 일 할 생각에 마음이 불안하다. 주말 밤을 잘 마무리하기 어렵다. 뭔가 불안하고 뭔가 걱정되고 뭔가 불편하다.  이럴때 내가 가진 해법은 다음주 한주간 할 일과 있을 일을 다시한번 정리해보는 것이다. 5-10분 정도 짧은 시간을 들여 이를 정리하고 다시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다.

일이 많을 때 일에 집중하는 법 - 압박과 멀티태스킹을 버리자

일이 많음에도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헛생각과 딴짓만하다 시간이 많이 흘러간다. 그냥 하면 될 일인데 참 시작하기 어렵다. 시작해도 몇 줄 읽지 못하고 몇 줄 쓰지 못하고 금새 다른 웹사이트를 열곤 한다. 주로 일이 많을 때 더 집중하지 못하고 일을 제시간에 처리하지 못한다. 많은 양의 일에 대한 압박이 주된 원인이다. A일을 하는데 B일이 끊임없이 생각이 나고 B일을 하는데 C일이 또 생각이 나게 된다. 여러가지 일을 생각하고 한번에 하려는 생각을 하지말고 의식적으로 하나씩 천천히 해야한다. 글을 일부러 천천히 소리내어 읽어보거나 일부러 글을 천천히 써보자. 하나씩 일을 더 잘 처리할 수 있게 된다.  결국 모든 일을 다 제시간에 마무리하게 될테니, 압박을 떨쳐버리고 하나씩 천천히.

미국 회사 생활이란 무엇 인가에 대한 생각 - 이해 관계 - US Corporate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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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Zane Lee on Unsplash 회사 생활이나 사회 생활에 대한 조언을 많이 들어왔다. 특히 대학원을 다니고 30살이 되어서야 학교를 벗어날 수 있었던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다. 사회 생활을 해봐야한다거나 회사 생활을 해봐야한다는 것 말이다. 혹은 사회 생활을 오래 해본 사람이 노련하고 회사 생활을 잘 하는 사람이 영리하다는 뉘앙스의 말도 적지 않게 들어온 것 같다. 그래서 회사 생활을 참 하고 싶었지만, 박사 후 연구원을 3년 더 하느라 사회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가 비로소 회사 생활 이란 것을 해보았다. 비록 미국 회사긴 하지만 나도 뭔가를 느꼈다. 먼저, 회사는 직원의 자기 계발 및 발전, 커리어에 도움을 주는 듯 표방한다. 예를 들면 학자금 보조 같은 것이다. 여러가지 혜택을 주는 듯 하고 그런 기회가 누구나 갖을 수 있는 것처럼 직원 혜택을 써넣는다. 하지만 직접 가까이에서 보고 부딪혀본 결과 회사는 직원의 계발 및 발전에 별로 관심이 없다. 회사 자체에서 그런 혜택이 있다고 하더라고 내 상사와 관련 매니저들이 관심이 없다. 나에게 그런 혜택을 주기를 꺼려한다. 내가 발전을 이루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동안 자신이 손해볼 것을 걱정한다. 내 모든 에너지와 시간이 자신들만을 위해 사용하길 원한다. 심지어 회사에 없는 밤이건 주말이건 완전히 자기가 시킨 일에 집중해서 원하는 결과를 최대화 하기를 원한다. 이건 한국이나 미국이나 비슷한가 보다. 직원의 자기 계발도 회사에게 정확히는 상사와 관련 매니저들에게 도움이 되어야만 허락이 되는가 보다. 즉, 상사에게 이런 자기 계발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 하려면, 그것이 회사에도 (물론 상사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주장을 해야 할 것이다. 결국 회사의 이해관계, 그리고 상사의 이해관계다.  그리고 회사에 제일 많이 기여한 사람이 최고 직원은 아니다. 일을 가장 열심히 많이 잘 한 사람이 가장 능력을 인정받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회사의 이해관계와 상사의 이해관계가

코로나바이러스 예방을 위한 과학적 접근 (마스크의 중요성) - Scientific Approach for Coronavirus Prevention (Ma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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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바이러스는 막연한 미신이나 마법과 같은 존재가 아니라 바이러스다. 크기와 무게를 가진 물리적 존재다. 막연히 두려워 한다거나 걱정을 한다기 보다는 과학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더구나 온도에서도 살아남고 매년 겨울마다 되살아 날 가능성이 있다는 말에 많은 사람들이 패닉에 빠지고 걱정을 많이 한다. 어쩌면 이러한 바이러스는 우리가 완전히 없애고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감기와 같이 가지고 함께 살아야 하는 존재일 수도 있다 . 백신을 개발한다고는 하지만 아직 부작용이 많고, 빌게이츠 재단 같은 곳에서 투자한 백신들도 마찬가지다. 인류를 위하는 척 하지만 정치적이고 돈을 벌고 싶어하는 느낌이 더 큰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막연하게 생각한다기 보다 과학적 접근을 통해 모두가 함께 대응 해야하는 문제인 것 같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우수한 누군가가 백신을 만들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이게 무엇인지 인지하고 잘 알 고 잘 대응해서 코로나바이러스의 절대 양을 지구상에서 줄여야 한다 . 이런 관점에서 과학적 접근을 밝혀진 사실을 바탕으로 해보았고, 이를 도움이 될가 하여 기록한다. 코로나바이러스는 크기를 가진 물체이다. 밝혀진 바로 0.1 마이크로미터, 즉 100 나노미터 라고 한다. 나노과학을 하는 내 입장에서 100 나노미터를 설명하자면, 색이 투명하지 않다면 자세히 보았을 때, 눈에 보이는 사이즈 이다. 파티클이 몇개 혹은 몇십개를 모으면 눈에 당연히 잘 보인다. 눈에 보인다니 그렇게 많이 두려운 존재는 아닌 듯 하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에서 어디에 이 입자가 닿았을 때 문제가 발생할 것인가. 바로 폐로 알려져 있다. 폐 이외의 다른 부분에서는 악영향을 미치기 어렵고 폐에 도달했을 때 코로나 바이러스가 힘을 발휘한다. 폐 이외의 장소 예를 들면 밖이나 옷이나 손과 같은 곳에서는 보호막을 형성하고 자신을 숨기고 있다가 폐에 도달하면 보호막을 벗고 활동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폐에 들어가는 것을 막는 방법이 바로

미국에서 바라본 한국의 코로나 바이러스 (우한 폐렴, COVID 19), 그리고 현재, 지금 미국 상황

코로나 바이러스가 시작되고 미국에서 한국을 보았다. 중국에서 시작된 우한 폐렴이라는 병을 전해들을 기억이 있었다. 그 당시에 그 누구도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우한에서 나타나 폐렴. 우한 폐렴이었다. 어느날 우한 폐렴은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닌 우리나라 이야기가 되었다. 한국에 한두명씩 시작된 우한 폐렴이었다. 가족들과 연락을 해도 한국은 너무 괜찮았고 잘 통제가 되는 듯 했다. 대구에서 신천지 종교 모임으로 인해 대규모 확산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때 쯤 이었던 것 같다. 우리가 우한 폐렴을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COVID19이라는 이름을 붙여줄 즈음이 말이다. 중국에서 시작된 병인데 어느새 전세계가 앓고 있었고, 한국은 코로나바이러스가 극심한 지역 중에 하나로 미국인들이 꺼리는 민족이 되었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국내선 비행기를 탔고 오른쪽에 백인 남성이 있었다. 나는 가운데 자리였기에 잠시 비켜달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그 남성은 일어나서 승무원에게 가서 자리를 바꿔 달라고 요청을 했다. 그리고는 맨 뒤 자리 남는 자리에 앉더라. 그 당시 감이 있지 않았고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 것 또한 그런 것 중 하나 였을 것이다. 돌아오는 비행기는 완전히 만석이었다. 모두가 다닥다닥 앉아 와야하는 상황이었는데, 내 왼쪽에 백인 여성이 있었다. 나를 보고 환히 웃고 인사했다. 내심 안심을 했다. 그런데 갑자기 마스크를 꺼내서 하고, 손세정제와 알콜 패드를 꺼내 좌석을 열심히 닦더라.  어느새 이런 사람이 되었다. 나는 지난 3년간 미국을 떠난 적이 없는 미국 거주 한국인인데, 내 생김새만으로 미국인들에게 악영향을 미쳤다.  지금 2020년 4월 5일, 오일 가격이 무너지고 미국 경제가 어려워지고 게다가 코로나바이러스가 덮쳤다. 그리고 미국은 전세계 코로나 확진환자가 1위다. 마트에 물과 화장지가 공급은 되지만 공급 되자마자 동이 난다. 소독, 멸균 관련 기능이 있는 모든 것들은 찾

약점을 극복하는 것에 대해 스쳐 지나가는 생각 (Turn weakness into non-weak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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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Matt Sclarandis on Unsplash 나는 약점이 많은 사람이다. 부끄러운 기억이 많은 사람이고, 어렵고 힘들 었던 것들이, 또는 내가 어찌할 수 없이 일어나 버린 일들이 약점으로 반평생의 삶을 지배해온 것 같다. 과거를 숨기기 바빳고, 지어내고 싶은 적도 많고 없었던 사실을 있었던 사실로 만들고 싶은 적도 많았다.  바꿀 수 있는 건 어떻게든 바꾸려 노력했고, 바꿀 수 없는 건 숨기고 잊고 살기 위해 노력했다.  나이가 들어가며, 깨닫고 배운 것 중에 하나가 바꿀 수 없고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가지고 가고 지니고 사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 이었다.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필요는 없었다. 지니고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고안해내는 것이다.  이중 약점은 정의를 달리하는 것이 내가 찾아낸 방법 이었다. 약점의 정의를 바꿔 약점으로 생각했던 일들을 약점이 아닌 것으로 만들고 스스로를 위안했을 때, 그 다음 내게 느껴진건 다른 사람들의 시선 이었다. 흔히, 특히 학창 시절에 사람들은 남얘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고 그게 참 상처로 많이 남는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다른 사람의 시선보다 더 중요하고 바쁜 일들이 많아졌을 때, 그게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다. 더 정확히, 다른 사람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 괜히 할말 없을 때, 남얘기를 하긴 하지만 사실 나도 그렇듯 다른 사람들도 나에게 관심이 없더라. 내가 어찌 생각하던 어찌 살던 자신에게 피해가 되지 않으면 철저히 관심이 없고 담아두지 않더라.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누군가 를 의식해 숨기고 싶어하고 정신적인 고통을 느끼고 있는 거라면 참 허무하지 않을가.

심장 이식과 사랑 - 라스트 크리스마스 (Last Christmas - 2019)

생판 모르는 사람의 환영을 본다. 마치 여러 인격 정신 질환 영화와 같이 말이다. 하지만 좀 다르다. 예고편을 보고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내용의 영화였다. 라스트 크리스마스 (2019), 좀처럼 나오는 크리스마스 사랑 영화, 하지만 전혀 다른 느낌과 내용 전개 오히려 남녀 간의 사랑이라기 보다는 인간, 가족, 인류의 사랑을 나타내는 듯 하다. 심장이 안좋은 카타리나, 톰의 심장을 이식 받는다. 2016년 크리스마스에. 톰은 교통사고로 죽으면서 그 심장을 카타리나에게 기증한 것이다. 그리고 삶의 의욕도 없고 가족과 관계도 좋지 않고 친구와의 관계도 썩 좋지않고 심지어 일도 제대로 되지 않는 카타리나는 2017년을 살아가고 또 다시 크리스마스를 맞이 하게 된다. 이런 카타리나에게 나타나는 허구의 톰. 카타리나는 진짜 라고 믿고 물리적으로도 그를 느끼지만 사실 그는 실존하지 않는다. 카타리나가 보고 느끼고 만지는건 허구의 톰의 존재이다. 하지만 톰은 카타리나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고, 활력있고 올바르고 보람찬 삶을 살 수 있게 해준다. 가족을 되찾아 주고, 친구들을 되찾아 주고, 일을 되찾아 주고, 삶을 되찾아 주었다. 하늘 나라에 있는 톰이 안타까워 카타리나를 찾아온 것일까. 아니면 톰의 심장이 카타리나의 정신 체계에 영향을 미쳐 카타리나 앞에 나타나게 한 것일까. 두 사람이 살아 있을 때에는 서로 알지 못한다. 서로에 대해 알지 못하고 만난 적도 없고 어떤 교류도 없다. 하지만, 톰의 심장이 이식 되며 둘은 하나의 몸에 하나의 정신 안에 있게 되고 그 둘이 사랑에 빠진다. 톰의 심장은 카타리나를 사랑하고, 카타리나는 보이지 않고 실존하지 않는 존재에 대해 느끼고 사랑에 빠진다.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마음이 많이 아파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럴 때 꼭 왼쪽 가슴, 심장이 아파온다. 마치 총 맞은 것처럼. 심장은 단순히 피를 공급해주는 펌프가 아니라 영혼이 담겨있는 어떤 무엇이 아닐까. 톰이 카타리나에게 하는 마지막 말. I am the part o

기억 하고 싶은 것만 기억 한다. 잊고 싶은 건 잊는다.

흔히들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한다는 핀잔을 주곤 한다. 보통 했던 이야기나 사건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다. 내가 기억해주길 바라는 것들을 기억해주지 못하는 그 그리고 그녀가 야속하게 느껴질 때 내뱉곤 한다. 하지만 나는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고 싶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선별해서 잊어 버리고 싶은 것들이 있다. 지나간 기억들이 나를 끝없이 괴롭힘으로 떨쳐버리고 싶다.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해서 그 또는 그녀를 힘빠지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 또는 그녀가 나에게 했던 행동이든 말이든, 그게 나에게 상처가 되고 나를 힘들게 한다면 떨쳐버리고 싶다. 그만 잊어버리고 나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또한 내가 했던 잘못된 말과 행동들. 의도하지 않았지만 잘못되었다고 뒤늦게 깨달은 불편한 기억들. 선별해서 잊어버리고 자유해지고 싶다. 아니 선별해서 잊어야 한다. 그래야 내 안의 불필요한 소모를 없애고 다시 내일을 살아갈 수 있도록.